섬유 산업 붕괴 막을 소방수가 없다.

면방 24사 370만추서 9개사 68만추 남아 빈사 상태
화섬 9개사서 6개사 불과·중국산 안방 시장 점령

기업 속수무책, 주무 당국 · 단체 오불관언 예고된 참사  
벤더·직물업계 상생 정신 발휘 국내산업 보듬어야

국내 섬유산업의 공멸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 거대한 섬유산업댐에 실 구멍이 생긴 지 오래지만 급기야 붕괴를 막을 수 없는 위기 경보가 울려 퍼지고 있다.

섬유산업의 대들보인 화섬과 면방은 머리 부문부터 고장이 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절망 상태로 추락하고 있고 하부 스트림인 직물·염색 산업이 우수수 무너지는 폭망 현실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기업은 속수무책이고 구원 투수가 되어야 할 정부나 관련 단체는 “죽건 살건 나 몰라”하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뿌리 깊은 면방과 화섬은 역사뿐 아니라 기업 규모가 큰 맷집으로 웬만하면 버틸 것으로 보았지만 이들 기둥 산업이 무너지면서 얹혀 있는 미들, 다운스트림 서까래가 추풍낙엽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면방산업의 날개 없는 추락은 어느덧 자포자기 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 후반 전성기 때 370만추에 달하던 국내 면방 설비가 줄고 또 줄어 겨우 68만추가 국내에 남았다. 24개사에 달하던 면방 회사가 9개사(방협 회원사)에 불과하다.

68만추 설비마저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제대로 가동을 못 해 올여름 일괄휴가를 예년보다 배로 늘릴 참이다. 국제 원면값은 예기치 않은 미·중 무역전쟁 등살에 더욱 떨어져 파운드당 61~63센트에 머물고 있다. 투입되고 있는 비싼 원면과 달리 면사값은 추락된 값에 판매돼 만들수록 적자투성이다.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해외로 탈출하면서 70년전 대한방직협회 창설 공신인 동일방과 대한방이 국내 설비가 없어 회원사 자격 시비가 불거질 정도로 지리멸렬되고 있다.

섬유산업 중 고용인력이 가장 많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직격탄을 맞은 데다 개성공단까지 중단돼 면사 팔 수 있는 시장이 형편없이 줄었다. 만들수록 적자인데 6월부터 3개월간 전력 피크제까지 겹쳐 엎친 데 겹친 격이다.

불황에 장사 없듯이 전통의 면방 산업마저 파산의 불길이 언제 어디서 발화된 지 긴장감을 떨칠 수 없다.

면방과 함께 섬유산업의 양대 업스트림인 화섬산업 역시 급속한 축소지향 속에 몇년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재벌축성의 지름길이었던 화섬산업도 장강의 뒷물이 앞문을 밀어내듯 중국이란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다.

섬유산업의 꽃인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사 모두 중국의 규모 경쟁 앞에 가격경쟁력을 잃고 안방 시장을 송두리째 내주고 있다.

61년 역사의 코오롱이 결국 누적 적자를 못 이겨 간판을 내렸고, 화섬 간판 기업의 하나인 휴비스도 울산공장을 전주로 이전하면서 원사 생산을 3분의 1로 줄였다.

롯데그룹에 편입된 KP캠택 역시 강력사만 뽑고 일반 폴리에스테르 생산을 포기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kg당 200원의 가격 차 때문에 수입사가 봇물을 이뤄 국내 화섬메이커 실제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산이 장악했다.

국내 니트직물과 화섬 우븐직물 등 대구와 경기 북부 산지에 오더가 씨가 말랐지만 수입사는 오히려 늘어나는 어이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훅’ 불면 날아갈 수밖에 없는 니트나 화섬직물의 버팀목은 국내 화섬메이커인데 대들보까지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주소다.

산업이 이 지경이 되는데도 구원투수가 돼야 할 주무 당국은 “내 알 바 아니다” 태도이고, 그 많은 섬유 단체나 연구소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꼴이다.

면방·화섬 붕괴 수요업계 외면 책임 커
국내 원사 붕괴되면 中염료·日무역보복 불 보듯

중언부언하지만 섬유산업의 대들보인 화섬, 면방이 무너지면 섬유산업 전반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국내 메이커가 버티고 있으니까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산 화섬사와 면사가 수급과 가격이 유지될 뿐이다.

국내 산업이 붕괴되면 중국산 희토류와 염료, 일본의 플루오린폴리아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같은 수출금지의 직격탄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마디로 죽은 나무는 물을 줘도 못 살린다. 국내 니트·화섬직물업계 의류벤더들이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지난날을 성찰하면서 국내 메이커와 함께 멀리 가는 상생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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