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과목으로 쓰인다는 유명 병법서(兵法書) 손자병법의 36계 중 10계에 소이장도(笑裏藏刀)라는 구절이 있다. 글자 그대로 “칼을 품고 있지만 웃어 보이라”는 뜻이다. ‘비장의 무기는 웃음으로 감추라’는 의미다. 일본 아베가 소이장도를 내세워 한국을 향해 앞에서 웃고 뒤에서 비수를 꽂았다. 그러나 아베의 비수는 급소가 아닌 대퇴부에 머물렀다.

한국경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 같이 호들갑을 떨었으나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고 있다. 반도체 핵심 소재를 금수시키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하루아침에 결딴날 줄을 알았으나 아베가 돌이킬 수 없는 착각을 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이미 상당 규모 비축 물량과 수입선을 확보했고 내년 2월이면 국산화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필요하면 손자병법 28계 ‘지붕 위로 유인한 후 사다리를 치운다’는 상옥추제(上屋抽梯]) 전략을 쓸 수 있음을 아베가 몰랐다.

유니클로 불매운동 빛과 그림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긴장을 하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은 자신감의 함축이다.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이 “한국인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DNA가 있다”고 한 것도 그만큼 자신감의 발로다. 결국 일본의 반도체 소재 업체는 무모한 아베의 수출 금지로 최대 황금 거래선을 잃고 떡쌀 담글 일만 남았다. 이런 때 우리 내부가 갑론을박 아군끼리 총질하지 말고 하나로 뭉쳐 대응해야 한다. 아베가 한국에 적개심을 갖고 망나니 칼춤 추는듯한데 우리가 돌부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런 와중에 들불처럼 번지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전개되면서 역기능의 폐해가 걱정된다. 세계적인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불매운동이 몰고 온 반작용이 결국 한국 기업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초고속 급성장을 이룬 유니클로 올해 매출은 18조 7,612억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순이익만 1조 2003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한국에서 지난해 1조 40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아베의 헛발질로 불거진 불매운동만 없었다면 올해 한국 매출이 1조 5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 자체에서는 매출이 감소추세지만 한국을 비롯한 해외 매출이 유니클로의 성장 동력이다. 이 판국에 지난주 훗카이도에 여행 간 某섬유 기업인은 현지 유니클로 매장에 일본인보다 한국인 고객이 훨씬 많더라는 전언이다.

아베가 원상회복을 하지 않는 한 불매운동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유니클로 한국 매출이 올해 1조원 선마저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유니클로 코리아의 지분 49%가 한국 롯데 그룹이다. 롯데는 분명히 한국기업인데 한국인들은 일본기업으로, 일본인을 한국기업으로 몰아세워 안팎 곱사등이 처지다.

롯데는 정부가 시킨 대로 사드 기지를 제공했으나 중국에서 모진 보복을 당했다. 결국 3조원의 천문학적 손실을 보고 철수 했다. 정부의 보상도 없었다. 국민들 사이에 롯데를 지원해야 한다는 동정론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드 기지 제공자로 그 많은 손실을 보고도 지난해 1조 3,000억원의 법인세를 냈다.
롯데뿐 아니다. 한국의 최대 의류 벤더인 세아상역이 폴라폴리스 제품의 염색 불량이 불거져 클레임 제기와 거래 중단이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한국의 대형 바이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유니클로와는 팬코와 한솔섬유, 중단됐다 복원된 세아상역 등 굴지의 벤더가 거래하고 있다. 도레이 첨단소재 등의 원사 메이커와 원단밀 등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벤더의 해외 소싱공장에서 대규모 물량을 공급받고 있다. 그런 유니클로가 거대 황금시장인 한국 매출이 줄어들 때 거래선에 대한 오더 감소는 불을 보듯 뻔하다. 돌이 미워 발로 찼지만 결국 내 발들이 아픈 역작용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와 달리 유니클로 불매운동은 얽혀 있는 한국 기업에게도 유탄이 떨어질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차제에 우리 섬유패션 업계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원천기술 확보와 국내 기업 보호 전략이다.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섬유산업 분야는 타격받을 요건이 별로 없다. 탄소섬유의 원천 기술은 일본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지만 효성과 도레이첨단소재의 도약이 눈부신 단계다. 하지만 섬유산업 전반에서 우리는 일본의 기능을 카피하는데 급급했을 뿐 독자기술 개발은 극히 미약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폴리에스테르를 비롯한 주요 화섬 원천기술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일본은 영국으로부터 절반 정도만 원천 기술을 도입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체 응용기술로 화섬설비를 구축했다. 한국은 응용기술을 활용한 일본 기술을 도입해 시작했다. 반면 중국은 영국의 원천기술을 송두리째 가져와 화섬설비를 구축했다.

설비구조·규모·기술능력 모두 한국이 가장 열세다. 일본 도레이와 데이진, 아사히카세이 같은 기업은 적자를 감수하며 거대한 첨단 연구소를 유지해오고 있다. 신소재 신기술개발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 한국 화섬업계는 있던 연구소도 돈이 안 된다며 우수수 문을 닫았다. 대포로 무장한 일본과 중국·대만에 비해 소총으로 응사하는 한심한 수준이다.

이번 일본의 무모한 경제보복을 계기 삼아 섬유 신기술 개발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정부도 반도체 소재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이 무한한 섬유 소재 기술개발에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기술 앞에 불황 없고 기술이 국력이다.
 
국산 소재 외면한 벤더들 애국심 갖자
 
또 하나 애국하는 마음으로 호소한다. 대량 수요처인 의류 벤더나 패션브랜드들 제발 국산 소재에 애착을 갖고 사용해야 한다. 지금 우리 섬유 소재 산업은 백척간두에 몰려 공멸 위기에 몰려있다. 화섬·면방·제직·편직·사가공 각 스트림이 줄초상 위기다. 앞으로 4~5년을 더 견디기 어려운 중증환자들이다.

그러나 시난고난한 우리 섬유 산업이 더 이상 몰락하면 통렬하게 후회할 때가 머지않았다. 이마저 붕괴되면 일본의 경제보복 정도가 아니라 원자재 쓰나미 현상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 망가지기 전에 국산 소재 사용에 앞장서야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 초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실제 여름휴가 기간이라 노출되지 않을 뿐 전국 섬유산지는 도처에서 곡소리가 요란하다.

화섬메이커의 누적적자에 미·중 무역전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진 면방업계의 고통은 최악이다. 대구직물산지와 염색업계, 경기 니트업계, 부산 염색업계 모두 탈진상태다. 그래도 이익이 많고 여유가 있는 의류 벤더와 패션브랜드 오너들이 상생 정신에 입각해 국산 소재 사용에 팔소매를 걷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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