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별대담] 노희찬 섬산련 명예회장(삼일방 회장)┃대담 조영일 발행인

섬산련 후임 회장, 연부역강한 지도자 구원 투수 기대 새해 섬유패션 업계 불황 바닥 탈출 계기 성장 동력 찾아야

미·일 무역 협상 타결, 세계 경제 꿈틀 기류 기대
글로벌 섬유 경기 침체, 공급과잉이 주범 차별화 대안
불황에 용기 갖고 투자해야 호황 때 과실 딸 수 있어

섬유산업 글로벌 경기 침체 최저임금 딛고 내공 쌓아야
새해 ITMF 서울 총회 한국의 경사, 단체·업계 총력 지원을

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인데 어느새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아온다. 언제라고 위기 아닐 때가 없었지만 2019년은 우리 섬유 업계에 유난히 모질고 고통스런 한 해였다.
글로벌경기 침체 속에 섬유 수출은 쪼그라들고 불황의 깊은 터널에 갇힌 내수 패션 경기 침체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후유증은 섬유 산업에 직격탄을 안겨줬다.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5,900개 섬유 기업이 해외로 탈출한 자리는 거미줄과 곰팡이만 가득한 참담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 섬유산업이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엄혹하고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산업보다 내공이 강하고 위기 대응 능력이 탁월한 우리 섬유 산업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그 길이 결코 녹록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반세기 섬유 한 우물을 파면서 면방 경영과 기술에서 가히 신의 경지에 들어선 탁월한 기업인이자 진정한 업계의 지도자이며 숭상받는 덕목인 노희찬 섬유산업연합회 명예회장(78, 삼일방직 회장)으로부터 새해 섬유 경기 동향과 업계의 각자도생 방안 등 한국 섬유산업 현주소와 미래전략 처방을 들어본다.

▷매년 반복되지만 2019년은 우리 섬유 업계가 모질게 고생한 한 해였습니다. 먼저 눈덩이 적자에 신음한 면방업계에서 삼일방은 우등생 경영을 했다면서요.
“모두가 힘든 한 해였지요. 삼일방이라고 다를리 있겠습니까. 다행히 우리 회사는 면방회사이면서도 모달과 텐셀 전문기업이란 점에서 대공황의 유탄을 피해갔어요. 크게 흑자를 낸 것은 아니지만 적자는 안 냈습니다.…”(웃음)

▷스위스 뷸러사에서 인수한 미국 조지아주 방적 공장은 안정이 됐나요.
“해외공장 인수해서 당장 흑자 내면 누구나 다 하죠…(웃음). 처음 인수 당시부터 3년간은 설비 교체하고 품목 전환하느라 적자를 각오하고 시작했으니까요.” 그동안 설비 보강과 개체에 많이 투자했어요. 다행히 계획보다 빨리 안정이 돼 새해부터는 흑자로 돌아설 것 같습니다.”

▷미국 조지아주 공장 제품은 전량 미국에서 소비되나요.
“전체 생산량의 60% 정도는 미국 자체에서 소비하고 나머지는 카리브와 중남미 국가에 팝니다. 멕시코에도 많이 나가지요. 벌써부터 일반 면사보다 차별화 소재가 많아 호평을 받고 있어요. ‘메이디인 USA’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예상보다 많은 강점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강점이 많아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일각에서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실제 상황은 흑자를 향해 정상화가 탄력을 받고 있으니까요.”

▷본론으로 들어가 새해 경기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예단하기 어렵지만 새해 글로벌 경기가 더 나빠질 요소는 없다고 봐요. 흔히 바닥 밑 지하실이 있다고 하나 면방부터 더 악화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우선 세계 경제에 주름살을 안겨준 미·중 무역 전쟁이 이른바 ‘미니딜’이 이루어지면서 파국은 면했지 않습니까. 국제 원면값도 즉시 상승 기류를 탄 것만 봐도 조금은 나아질 것 같습니다.”

▷경기가 오건 오지 않건 국내 산업이 존립해야 할 텐데 면방은 이미 50 만추 규모로 축소됐습니다. 경기 호전에 의미가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섬유 산업의 모체인 면방 산업이 경쟁적으로 베트남으로 탈출하는 등 이 지경이 된 것은 국내 제조업 경영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50 만추 남짓의 면방 설비가 국내에 남아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국내 생산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후엔 수요 업계의 고통이 아주 심해질 겁니다. 면방뿐 아니라 화섬과 직물, 염색 산업이 더 이상 붕괴되면 의류 벤더나 패션 기업들이 외국산의 가격 폭등과 수급 문제로 상상 이상의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요.”

▷부질없는 얘기이지만 한국 섬유산업이 참담하게 무너진 원인이 무엇인가요.
“섬유뿐 아니라 모든 산업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시장이 붕괴되는 것은 필연적인 논리입니다. 전 세계가 공급 과잉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국의 무차별적인 신증설이 이를 자초했고 갈수록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경쟁력이 취약한 한국 섬유 산업이 희생된 것이죠. 여기에 우리 업계 내부의 기민한 대응력 부족이 몰락을 재촉한 면도 크고요.”

▷어떤 점에서 대응력이 부족했나요.
“아시다시피 적자 개념이 없는 규모 경쟁에 몰두한 중국과의 차별화 전략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거죠. 중국의 섬유 각 스트림별 1개 기업생산 캐퍼가 한국 전체 생산량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길은 중국이 못 만든 제품으로 돌파구를 마련했어야 함에도 천수답 경영으로 허송한 거죠. 아직도 중국과 똑같은 제품으로 경쟁한다는 자체가 웃음거리입니다.”

▷투자하지 않고 노력도 게을리 한 업보 아닙니까. 
“국제섬유신문에 기사화된 것처럼 일본 경영계의 신(神)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의 경영 철학인 ‘호황은 좋다·불황은 더 좋다’는 경영 어록은 섬유 기업인들이 더욱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어려울수록 첨단 자동화 설비에 투자하고 신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에 전력투구해야 함에도 우리는 너무 소홀했어요. 아무리 좋은 기술도 첨단 설비가 받쳐주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섬유 업계가 첨단 자동화 설비 개체와 신규 기술로 무장하면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시장 기반을 두고 있는 순발력 강한 한국 섬유는 질 경영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회장님이 섬산련 회장 재임 시 역점을 두고 탄생시킨 스트림 간 협력 간담회가 별다른 성과를 못 거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사실 스트림 간 협력 간담회는 잘만 운영되면 업종 간 기업 간 상생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의류 벤더와 패션업체, 소재 업체 대표들이 서로 협력을 증진하고 애로를 공동 타개하면 많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 의류 벤더끼리도 때로는 소원해진 관계가 많이 개선됐고 소통을 통해 협력 체제를 구축한 성과가 크지요.”

▷오히려 벤더들이 겪는 애로 사항을 섬산련이 더 많은 지원을 한 것 아닙니까.
“스트림 간 협력 간담회가 발족되면서 벤더들의 애로 사항인 해외 공장 중간 관리자 교육 문제를 섬산련이 앞장서 해결했지요. 당초에는 해외 파견 관리자 교육을 기업과 섬산련이 절반씩 비용 부담하기로 했으나 섬산련이 고용노동부의 협조를 받아 기업부담을 없도록 해결했어요. 그렇게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관리자들이 각 벤더 해외 공장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지요. 또 맞춤형 소재 컬렉션을 열어 신소재 선택의 문을 넓혀 줬고요. 이제부터는 벤더들이 같은 값이면 국산 소재를 사용하겠다는 상생 정신을 가져줬으면 해요. 가격이 비싸면 조정하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기본 사고에서 국산 소재 우선 정신이 절실합니다. 중국과 대만처럼….”  

▷국내 섬유 산업이 벼랑 끝에 몰려 파산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정부와 단체의 기능 회복이 아쉽다는 여론입니다.
“아시다시피 섬유패션 산업은 아직도 제조업의 10%, 고용의 9% 가까이
차지하는 국가 기간산업입니다. 기업의 생존은 기본적으로 각자도생이지만 그러나 산업이 어려울 때 정부가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단순히 돈을 지원하란 것이 아니라 구조 고도화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스마트 팩토리를 위해 장기 저리자금을 적재적소에 맞춤 지원한다거나 R&D 지원, 시장 확대 방안 등 적극적이고 다원적인 중장기 육성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책무입니다. 정부는 물론 섬산련을 비롯한 단체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텐데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새해에는 섬산련 회장 선출이 있고 ITMF 연차 총회를 서울에서 여는 커다란 행사가 잡혀 있습니다.
“성기학 회장이 2018년 9월 케냐 총회에서 ITMF(세계섬유제조업자연맹) 회장에 선임된 것은 성 회장 개인뿐 아니라 한국 섬유업계에 깊이 남을 경사입니다. 10월 서울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섬산련뿐 아니라 섬유패션 단체와 업계가 적극 참여하고 지원해야 할 겁니다.
더불어 후임 섬산련 회장은 성기학 회장을 중심으로 업계 중진들의 뜻을 모아 위기의 섬유 산업을 살릴 수 있는 연부역강한 구원투수를 등장시킬 것으로 믿습니다. 지도자는 희생과 봉사가 최대의 덕목이란 점에서 적임자를 추대하겠지요. 다만 희생과 봉사란 차원에서 섬산련 회장은 화합과 단결을 위해서도 전통대로 경선이 아닌 추대로 선출돼야 하고요.”

▷끝으로 새해를 맞아 섬유패션 업계에 덕담 한마디 해주시죠 ….(웃음)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의 고통 속에 보낸 2019년에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2020년 새해에는 우리 섬유패션 업계가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며 성장 동력을 구축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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