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주고받는 타협의 극치다. 여야 대치 상황에서도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협상의 진수다. 전부 아니면 전무는 아마추어 정치의 아집이다. 결과는 빈손이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보수 야당은 전무를 택했다. 삭발, 단식 논성과 함께 엄동설한에 광화문에 대규모 인원을 집결시켰지만 빈 수레만 요란했다. 새해 예산안부터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유치원법 등 뭐 하나 건진 것이 없다.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임을 뻔히 알면서 깡으로 밀어 붙힌 전략 부재였다. 닥치고 집권욕에만 올인한 패착에 반성도 변화도 책임도 없다. 과반을 목표한다는 3개월 후 총선 결과도 가물가물하다.

반면 야합의 비난을 감수하며 군소정당과 합세해 손 안대고 코 푼 여당은 더욱 기고만장하다. 여세를 몰아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의기 당당했다. 국민이 걱정하는 경제는 시장과 달리 낙관 일변도였다. 천정부지로 뛴 부동산값은 안정을 넘어 원상회복의 초강공을 예고했다. 누렇게 부황 든 인민을 짓밟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미쳐 날뛴 북한 정권엔 여전히 관대했다. 자화자찬이 심했다.

전통산업 농어업처럼 보호해야

본질 문제로 돌아가 대명절 설 문턱에서 매서운 대한(大寒) 추위 칼바람이 몰아친다. 글로벌 경제와 내수 경기가 얼어붙어 추위 타는 기업·얼어죽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실물경제는 모질게 혹독했던 지난해보다는 나아지겠지만 아직 냉골이다. 글로벌 경기뿐 아니라 내수 패션 경기는 수년째 바닥 밑 지하실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구조적인 경기침체에 이어 옷 장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날씨가 거꾸로 갔다. 겨울 패션의 총아인 롱패딩이 안 팔려 산더미 재고가 이월상품으로 넘어간다. 연중 가장 큰 대목인 겨울 장사를 허송해 패션 업계의 땅 꺼지는 한숨 소리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새해를 맞은 이 시점에서 섬유산업의 현주소를 냉정히 들여다보고 공멸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다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우리 섬유산업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는 것은 부인 못 할 사실이다. 그럼에도 냄비 속 개구리처럼 죽는 죽도 모르고 있다. 결국 종착역은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다.

섬유패션 산업이 도산이란 돌림병이 창궐하는데도 치유할 명의도 예방책도 없다. 냉혹한 각자도생 시대에 기업 스스로 살아남겠다는 의지도 철학도 부족하다. 고임금과 인력난,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경쟁국 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방이 없다. 처방의 즉효약은 투자가 정설인데도 “돈이 없고 미래가 불안하다.”며 자포자기 상태다.

중국, 베트남 등지와 경쟁해서 살아남는 길은 양이 아닌 질 경영이다. 차별화·고부가가치를 위해서는 먼저 수십년된 구닥다리 설비부터 개체해야 한다. 최저임금 과속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과 품질 경쟁의 기본 수칙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 바탕에서 오더 수주, 생산 관리, 영업 관리, 경영관리 모든 과정을 혁신해야 한다. 백약이 무효라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자신도 죽고 남도 죽이는 과당경쟁, 저가 투매, 남의 제품 카피 행태의 고질적인 병폐부터 고쳐야 한다.

글로벌 시장이 아무리 넓어도 싸고 좋아야 반응한다. 아쉽고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다. 품질은 고만고만하면서 가격만 비싼 어중간한 제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명품은 아니지만 경쟁국이 따라오지 못한 차별화 전략이 대안인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 등 경쟁국과 규모 경쟁이 불가능하다면 차별화를 통한 틈새시장 공략이 대안이다. 그러나 이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요술이 아니다. 설비투자, R&D 투자, 시장개혁, 초단납기, 사후관리 등이 병행돼야 한다. 어렵지만 한국섬유 업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다. 과거에 대한 패배주의는 실수지만 미래에 대한 패배주의는 범죄라고 했다. 업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전력투구해야 한다.

기업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정부가 더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새해 섬유패션 기술력 향상 지원금이 작년보다 다소 늘어 220억 원 규모로 증액했지만 이 정도로는 새 발의 피다. 512조 국가 예산에 걸맞게 제조업의 9% 고용의 8%를 차지하는 섬유산업에 통 큰 지원이 시급하다.

일본처럼 설비투자에 장기저리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주는 파격적인 지원책이 시급하다. 전통산업인 섬유 산업을 반도체와 똑같은 잣대로 산업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정책의 경도다.

섬유산업은 전통산업이면서 일자리 창출의 일등 공신이란 점에서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농수산업에 매년 수십조원을 지원하는 것은 농수산업이 수지는 안 맞지만 농어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쌀값을 국제시세보다 5배 비싼 값에 구매하고 비료값, 전기세, 포장재 가격까지 파격 지원한 것이다.

섬유산업 현장은 농어민 같은 서민들의 일자리다. 봉제는 도시형 산업으로 일자리 창출의 금맥이다. 면방, 직물, 염색, 부자재 모두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다. 이같은 전통산업에 정부가 팔 소매를 걷고 다각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섬유산업의 전력료가 반도체, 전자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섬유 산업도 농어업처럼 정책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중언부언하지만 새해부터 섬유패션인들의 의식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지난 12월 대구에서 연 매출 300억 원을 웃돌던 S통상이 경영난을 못 이겨 기업을 자진 정리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아웃도어용 원단과 이불 원단 전문 업체다. 국내 패션 업체나 의류 벤더가 국산 원단 더 쓰기 운동에 동참했다면 이같이 스스로 떡쌀 담그는 참상을 면했을 것이다. 패션 제품 제조원가 중 원단값 비중이 얼마이길래 잔인하게 외면한 패션브랜드나 의류 벤더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甲'과 ‘乙’은 바뀐다. 역지사지 생각해야

국내 섬유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 업보는 의류 벤더나 패션브랜드에 그대로 넘어가는 것은 자명하다. 그때는 원사나 원단 가격이 폭등하고 품귀 현상이 닥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실적으로 강자적 입장인 의류 벤더나 패션브랜드들이 순망치한(脣亡齒寒),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해 함께 멀리 가는 자세가 절실하다. '甲'과 ‘乙’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가변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새해에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섬유패션 단체나 연구소가 꿀 먹은 벙어리, 방안통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기학 회장이 섬유패션인 신년인사회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가 되기까지 침묵으로 일관한 섬유패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 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이 엄동설한 칼바람 속에 태극기 부대처럼 길거리에 나가서 집단 행동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산업을 살리기 위해 목소리를 내자는 뜻이다. 울지 않으면 젖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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