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파괴를 안 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슘페터의 명언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섬유의류 제품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 유통업체의 변화무쌍을 보면 더욱 실감 난다. 세계1위 경제 대국인 미국은 전통적으로 11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땡스기빙데이'부터 전 유통업체의 공짜 같은 파격세일 행사가 벌어진다. 이른바 블랙프라이데이에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오프라인을 찾아 횡재하는 축제 세일이다.

미국 유통업계는 '땡스기빙데이'에서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한 달 매출이 1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래서 미국의 내놓으라 하는 크고 작은 유통업체의 결산기는 우리처럼 12월 말이 아닌 1월 말이다. 연말 매출을 집계해 1월 달에 결산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연중 가장 큰 전통세일 행사에 변화가 생겼다.

아마존의 유통 개벽 '7월 프라임데이'

오프라인 공룡 아마존이 겨울이 아닌 한여름에 블랙프라이데이 파격세일 행사를 벌인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아마존의 한여름 프라임데이 행사가 7월 15일 자정에 시작해서 48시간 열린다. 작년의 36시간보다 늘어 100만 가지 이상의 세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1억개 이상 판매해 42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50억 달러를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프라임데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을 어패럴제품이다. 온라인 공룡 아마존의 7월 프라이데이 행사에 기선을 뺏기게되자 온라인 E베이도 동참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이에 뒤질세라 '타켓'이 이 기간에 '딜 데이' 세일행사에 맞불을 놓는다. 다른 오프라인 등도 가세해 7월의 블랙프라이데이가 미국 유통가를 뒤흔들고 있다.

기상천외한 또 하나의 행태는 '에버크롬비'가 소비자에게 외상 거래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먼저 가져가고 돈을 나중에 받는 외상거래행태다. 아마 이 전략이 먹혀들어 갈 공산이 커지면서 경쟁 유통업체나 브랜드들이 따라 할 가능성이 크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여름 블랙프라이데이나 외상거래로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우리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마냥 반길 수만 없는 고민이 있다.

온•오프라인 유통업체가 파격 세일을 하는 것은 벤더들에게 납품 가격인하로 이어지고 이는 득달같이 원단•원사업체에 전가 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외상 판매가 늘어나면 바이어의 벤더에대한 결제시한도 현재 90일•120일보다 더욱 지연돼 바이어는 제 돈 안 들고 장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유통혁명으로 승승장구하는 아마존의 위력에 기라성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다. 그나마 월마트와 타겟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무서운 저력이다.

아마존의 독주 속에 미국의 주요 유통업체 주식값을 보면 기업 내용을 대충 알 수 있다. 지난주 기준 아마존 주가는 주당 1,939달러에 달했다. 세계 최대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112.32달러였고 타겟은 87.90달러였다. 반면 그동안 잘 나가던 콜스는 47.52달러로 추락했고 J•C 페니는 주가가 1달러 후반대다. 아마존의 독주 속에 대다수 리테일러 등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상승하지만 의류 시장 조건은 이같이 저가 공세로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매년 수직상승하던 우리 벤더들이 외형을 유지하지만 내용 면에서 빈곤 상태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의류 벤더 속성상 절대 자신들은 밑지고 팔지 않는다. 수단방법을 동원해 원단밀과 원사업체 또는 하청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자기 몫을 챙긴다.

그러나 의류벤더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면방•화섬과 원단밀이 더 이상 죽어가는 현상을 강 건너 불구경해서는 안 된다. 국내 소재업체가 소멸되고 나면 결국 중국의 염료 횡포처럼 공급국의 횡포를 각오해야 한다.

때마침 일본이 한국경제의 급소를 찔러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이 섬유에서도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섬유•의류가 반도체처럼 일본에게 당할 리는 없지만 중국이 지금의 일본 반도체 핵심 부품처럼 한국을 쥐었다폈다 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

아무리 냉엄한 상거래 관계라고 하지만 일부 의류벤더가 상습적으로 저지른 부도덕한 행태는 곪아 터질 수밖에 없다. 벤더 자신이 저지른하자까지 원단밀이나 협력 업체에 떠넘기는 횡포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어떤 벤더는 완제품봉제 하자를 원단하자로 돌리면서 거액의 클레임을 제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억울한 원단밀이 제품 백쉬핑을 요구했으나 바이어가 소각하겠다고 해서 해외 창고에 직접 찾아갔더니 해당 원단밀과 무관한 엉뚱한 제품을 가리키는 촌극이 벌어진 일이 있다.

'甲'질은 이뿐 아니다. 某 유명벤더 간부는 거래 원단밀로부터 최근 몇 년간 2억원 이상의 상납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해고된 일이 있다. 당연히 형사고발 해야 함에도 사표만 받고 끝냈다. 이 간부가 베트남의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나 '제 버릇 개 안 준다'는 보장이 없다. '갑'이 된 의류벤더의 독선과 횡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직도 창궐하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세상사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순환의 원칙을 부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의 기업은 연간 1000억원대의 이익을 만끽하면서 거래 원자재 업체를 쥐어짜는 고약한 버릇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벤더 오너 등이 상생 정신을 발휘해 함께 멀리 가겠다는 의지와 철학이 있어야 한다. "아랫사람이 한 일이나 모르겠다"는 식은 안된다. 국내 중소 원단업체들이 줄초상 당한 책임에서 의류벤더가 자유로울 수 없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국산 원자재를 사용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한두 번 지시만 해서는 실무진의 변명으로 끝난다.

의류벤더 국산사용 상생의지 없다

글로벌 벤더로 우뚝 선 오너 들이 전면에 나서 “같은 값이면 국산을 쓰라”고 줄기차게 채근해야 한다. 설사 국산 원자재가 비싸다면 포기하지 말고 가격을 맞추라고 닦달해야 한다. 국산 원자재를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하면 공급자 측도 손해를 감수하고 가격을 맞출 것으로 본다. 제조업은 가동율이 원가인 절박감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대로 가면 우리 소재산업은 몇 년을 더 버티기 어려운 한계 상황이다. 벤더들이 함께 멀리 가겠다는 상생 정신이 없다면 그 시기는 더욱 단축될 수밖에 없다. 국내 화섬•면방•원단밀이 죽건 말건 "나만 살겠다"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 지금은 의류벤더가 한국 섬유산업을 살리는 마지막 구원 투수임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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